
어디서 오는지 모를 향기로운 바람이 심심하다는 듯 스쳐가는 오늘, 설레는 마음으로 맞았던 첫 날의 느낌을, 첫 날의 함성을 기억해 봅니다. 아직도 이렇게 가슴을 뒤 흔드는데, 아직도 이렇게 생생한데, 이제 몇 경기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섭섭하다 못해 왠지 모르게 서글퍼 지는 오늘입니다. 마냥 따뜻할 것만 같던 바람도 어느새 시원하다 못해 차갑게 변해버린 오늘처럼 그날도 바람이 꽤 쌀쌀했었죠. 나와 그들과 당신들 만의 축제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아쉬움이 한 없이 밀려오는 오늘, 처음이어서 설레던 그날을 떠올리며 그들, 당신들,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들어보실래요?
나는 잔디입니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그들이 어김없이 밟고 뛰는 푸른 잔디입니다. 또한 그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행운 아닌 행운을 얻은 운 좋은 녀석이기도 하죠.
내겐 경기장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푸른 나를 밟으며 열정을 뿜어내는 그들을 지나 경기장의 지붕까지. 그 중 최고의 장면을 꼽으라면 하늘 높은 줄 모르는 함성과 그들이 뿜어내는 열정이 합쳐진 모습이라 주저 없이 말하겠습니다.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벅찬 감동 그 자체니까요.


그들이 흘리는 땀은 나를 밟고 뛰는 그들의 눈물이, 노력이, 희생이 담겨있는 그들 열정의 산물이니까요.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억누른 채 뛰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또 뛰는 그들의 땀이 어떻게 그렇게 단순할 수 있을까요?
당연하다 말할 수도 있겠죠. 그것이 그들의 사명이니까, 그들이 프로인 이상 그들의 눈물도, 노력도, 희생도 모두 그들이 짊어지고 가야 할 것들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그들이 품은 열정이 온전히 느껴지는 내겐 당연한 그것들이 고맙기만 하기에 늘 그들과 함께 호흡하곤 합니다.
땀으로 범벅이 되어 지쳐도 자신과 팀의 목표를 알기에 다시금 이를 악무는 그들은 눈부시게 빛납니다. 90분이라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동안 당기고 밀어주고 함께하며 서로를 아끼는 모습은 다시금 그들에 대한 믿음으로 메아리 쳐 돌아 옵니다.
이런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 나는 그들을 만나는 순간, 순간이 벅차고 행복합니다.
다만 한가지 그들에게 전하고픈 마음속 메시지가 있다면 이제는 당당히 표현하며 함께 즐겨줬으면 하는 아쉬움 섞인 작은 투정입니다.
보여주지 않으면 느낄 수가 없습니다. 느끼지 못하면 믿을 수도 없습니다. 나를 밟고 뛰며 느끼는 감정들을 이제는 보여주세요. 표현해주세요. 그것이 기쁨이던, 슬픔이던 나를 밟고 있는 순간만큼은 그대들이 주인입니다. 무엇에도 아랑곳하지 말고 마음껏 보여주세요. 그리고는 함께 즐기십시오. 그대들을 따라 울고, 웃는 이들과 기뻐도 함께, 슬퍼도 함께, 느끼고 즐기세요. 그것이 곳 의무이고, 권리니까요.

그러나 정작 당신들은 아무것도 필요 없답니다.그저 내 팀이니까, 내 선수니까 변치 않는 지지를 주는 것 밖에는 달리 할 것이 없다 말합니다. 늘 한 곳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그것이 오히려 행복이랍니다. 지쳐도, 상처 받아도 그들보다 더하겠냐며 자리를 비우지 않는 아름다운 사람들, 바로 당신들입니다.
당신들은 모릅니다. 내가 바라본 당신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가끔은 그런 당신들의 온전한 진심을 알아주지 않는 이들도 있지만 진심이 통하지 않는 이는 진심을 모르기 때문이랍니다. 당신들의 진심을 믿으세요. 진심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빛나니까요.
가끔은 그들 마저 당신들의 진심을 잘 몰라주는 것 같아 섭섭하기도 하겠죠. 그러나 누구보다 그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기에 섭섭하단 말 대신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당신들이겠죠.
나는 알고 있습니다. 그들과 당신들이 보이지는 않지만 서로의 기둥이 되어 서로를 지키고 있다는 것을, 그 기둥이 없으면 무너지게 된다는 것을.
지금보다 더한 단단함으로 서로를 지킨다면 어느 순간 그들과 당신들에게 다가온 눈부시게 빛나는 별을 보며 말하지 않아도 그저 한 공간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최고의 행복을 느낄 그날이 올 겁니다.
지칠 때도 있겠지만 이것 만은 잊지 마세요. 그들에게 있어 당신들의 존재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이라는 사실을. 단지 그들은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당신들이 알아줄 것이라 여기며 늘 고마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아냐구요? 내가 보는 그들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들의 온기를 느끼며, 그대들의 함성을 품으며


넘어지고도 1분 1초가 아깝다는 듯 벌떡 일어서는 그들을 보면 무엇이 그들을 저렇게 이끄는 걸까 의아할 때도 있지만 그들의 눈빛에 담겨있는 의미가 보이기에 나는 가까이서 그들을 보면서도 안타깝다 느끼지 않습니다. 안타깝다 느끼는 것이 어쩌면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는 그들의 노력을 몰라주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렇게 땀이 범벅이 되어 뛰는 그들과, 그런 그들을 따라 마음으로 함께 뛰고 있는 당신들이 연출해 내는 한 장면 한 장면은 그 어떤 예술 작품보다 더 갚진 장면이라는 사실 알고 있나요? 경기장의 구석 구석이 모두 눈에 들어오는 나는 굳이 알려 하지 않아도 느껴진답니다. 경기장의 가장 낮은 곳에서 보는 그들과 당신들의 모습은 ‘열정’ 이라는 단어의 가장 정확한 정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끔은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준다면, 그래서 내가 좀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 볼 수 있다면 하는 생각에 문득문득 아쉬움이 밀려들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현재진행형인 이상 머지않아 그런 날이 올 거라 믿습니다. 그때가 되면 그들은 조금 더 큰 지지를 받으며 경기에 나설 수 있을 것이고, 당신들은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더 커진 응원소리에 기뻐하며 그들을 외칠 수 있겠죠. 또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며 행복할 겁니다.
이렇듯 그들과 당신들을 보는 것이 행복인 내게도 가끔은 슬플 때가 있답니다. 나를 향해 화풀이를 하는 이들 때문이죠.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아프다 못해 서글프기까지 합니다. 승리, 혹은 패배라는, 의지대로 선택할 수 없는 결과 앞에 실망도, 또 흥분도 할 수 있겠지만 그럴수록 좀 더 큰 목소리로 열정이 담긴 응원의 메시지를 전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축구는 전쟁이 아니라 축제니까요. 너와 나, 우리 모두가 함께 즐기는 축제니까요.

함께 웃는 날이 있으면 함께 우는 날도 있었고, 서로가 힘이 되는 날이 있었으면 서로가 가끔은 미운 날도 있었겠죠. 그래도 하루 하루를 주저 없이 축제라 부를 수 있었던 것은 단 한가지 이유 때문이었을 겁니다. 나, 너, 가 아닌 우리였기에.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축제가 끝을 향한 내리막길을 가고 있는 지금, 내게는 그들과 그리고 당신들과 함께한 하루, 하루가 아직도 오늘처럼 생생하네요. 오늘처럼 생생한 기억들을 깊게 새기며

변치 않는 모습으로 그라운드의 주인으로 당당해 주세요.
변치 않는 모습으로 지금 그 자리를, 그리고 그들을 지켜주세요
그들, 그리고 당신들의 열정이 꺼지지 않는 한 그들과 당신들을 지켜보는 나도 영원히 푸르겠습니다.
글=공희연 FC서울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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